성명서

N번방 사건은 여자 집단에 대한 공공연한 테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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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 995회 작성일 20-03-27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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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사건은 여자 집단에 대한 공공연한 테러입니다]


N번방 사건의 주범으로 알려진 조주빈이 인천 사람이라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수십명의 성인 여성과 여성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학대 범죄를 저지르고 동조한 남자들이 26만 명에 이른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인천 지역에서 20여 년간 가정폭력 및 성폭력, 성착취에 저항하며 여성인권 운동을 이어온 인천여성의전화는 이 사태에 깊은 절망과 함께 분노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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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이 사건이 여성 문제가 아니라 인권 문제라면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철저하게 짓밟고 유린한 범죄”라고 말합니다. 또 무려 26만명의 남자들이 연루된 초유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남자가 그런 것은 아니라며, 주범인 조주빈을 희대의 ‘악당’으로 규정하고 그에 가담한 몇몇 사람들을 선별하여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정말 주범과 동조자를 가려내어 몇몇 남자들만 제거하면 세상에 다시는 이런 성범죄가 반복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N번방 성착취 사건은 일부 남성 집단이 여성 집단에게 공공연히 저지른 집단 린치이자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테러입니다. 인류 역사 내내 성적으로 착취당하고 박해를 받아왔으며,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차별과 고통 속에 있는 “여성”이라는 집단을 상대로 남성들이 유구하게 저질러온 폭력이 또 확인된 것입니다. 미투, 스쿨미투, 불법촬영, 버닝썬 사건, 그리고 김학의, 장자연 사건 등 다른 성폭력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은 사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몫이 늘어가고,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는 등, 여성이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게 됨에 따라 이에 분개한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전하는 경고장이자 선긋기입니다. 직접적으로 피해를 당한 일부 여성을 본보기로 하여 “너희가 그렇게 잘난 척해도 결국 남자의 발 아래에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강간과 성폭력을 막고 여성이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 사회가 특단의 선제적 조치를 해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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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떤 ‘기술’이, 그리고 누가 성폭력범죄를 일으켰는지 보다 중요한 것은 강간과 성폭력 범죄에 대해 관대한 문화를 만들어 내는 사법부와 정치권의 저급한 인식이 바탕에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성범죄 또한 수사 기관이나 입법 기관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진화하고 있으며 이전까지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방식의 범죄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경찰과 사법부는 기술 변화 속도가 빨라 대응하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라는 것을 여성들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여성에 대한 폭력과 폄하, 멸시, 차별, 혐오를 공공연히 표현하는 것을 어떤 경우라도 금지하고 이에 대해 강력하게 규제한다면 한 인간 집단이 다른 인간 집단을 향해 저지르는 테러리즘도 -기술 변화와 상관없이- 자연스레 종말을 고할 것입니다. 성착취 범죄를 문화적으로 허용하고, 묵인하고, 방임한 후에 잔혹한 사건이 벌어지면 그제서야 해당 범죄 사실과 특정인만 가려 처벌하려고 하는 것은 기만이며 속임수입니다.

동시에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을 들여다보고 일상 속 성폭력의 문제를 드러내어 뜯어 고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N번방 사건은 여성을 고문하고, 때리고, 목 조르고, 피흘리게 하는 데서 성적 흥분을 유도하는 하드코어 포르노가 모델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더 이상 아이들을 여성에 대한 폭력과 혐오에 기반하는 포르노에 노출된 채 자라나게 할 수 없습니다. 인천 소재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인천 소재 대학에 다니면서 인천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거리를 활보한 조주빈과, 그에게 동조하며 여성을 노예삼아 짓밟는 것을 오락거리로 삼은 수많은 남자들을 떠올리면서 우리의 교육현장에서 그동안 무엇을 키웠고 무엇을 놓쳤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환경의 어떤 부분이 여자를 상품으로, 강간 인형으로, 게임 속 캐릭터로 여기게 만들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딸들이 이렇게 자라난 남자들의 인질이 되고 노예가 될 때까지도 우리가 몰랐던 것들에 대해 더 많이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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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국가가 여성을 향한 모든 종류의 혐오 및 차별 표현에 대해 금지할 것을 요구합니다. 도시를 둘러싼 포르노적 이미지와 광고, 룸살롱과 마사지샵을 비롯한 상업적 성착취 업소와 그 간판, 거리에 흩뿌려진 성착취 홍보물들을 금지시키고 신고하여 처벌해야 합니다. 포르노의 소비와 유통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여야 합니다. 여자 학생들에 대한 교사들의 성희롱에서부터 직장 내 성차별과 유리천장을 깨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성범죄자에 대해 신상공개와 더불어 무거운 형량을 통한 강력한 처벌이 내려지길 바랍니다. 성범죄자의 강력한 처벌은 피해의 회복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사건을 통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사회 구성원, 특히 여성들과 아이들이, 모든 딸을 키우는 어머니들이 충격과 상처를 받았습니다. 여성들에게 안겨준 심각한 트라우마는 “보고도 방관하거나 중립”을 지켜온 공범자 남성집단, 사건을 다루는 사법부와 정치권에 대한 강력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미래사회를 아이들에게 물려주려면 반드시 성평등한 사회정의가 실현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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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과 기본권에 대한 여자들의 요구가 남성들의 극단적인 폭력을 불러왔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더 강력하게 평등과 기본권의 가치를 옹호해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적이고 성평등한 사회이며 미래지향적인 사회입니다. 인천여성의전화는 먼지 같은 차별에서부터 극단적인 혐오범죄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여성 폭력에 반대하며, 어떤 테러리즘도 우리 여성들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합니다. 여성들이 강인하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우리를 다시 소유하고, 짓밟고, 유린하고, 죽이려는 그 어떤 노력도 우리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피해자와 함께 손잡고 끝까지 싸워 이길 것입니다.


2020. 3. 26

인천여성의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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