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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헤어지자고 해도, 만나달라고 해도 살해되는 여성_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을 맞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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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 452회 작성일 21-11-2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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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을 맞이하여

 

 

헤어지자고 해도, 만나달라고 해도 살해되는 여성

 

최근 교제 관계에서의 살인이 급증하고 있다. 마포구 오피스텔에서 남자친구에게 폭행으로 살해당한 황00씨 사건 이후에도 교제 관계에서의 살인은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에 신변보호까지 받던 여성은 신고를 하고도 살해당했고, 남자친구에게 떠밀려 아파트 19층에서 떨어져 살해당한 여성이 있었으며, 자신의 이별 요구를 거절한 여자친구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풀 악셀을 밟아 고의로 사고를 내 살해한 남성도 있었다.

 

지난 9월 방송된 PD수첩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교제폭력으로 사망한 여성의 숫자는 열흘에 한 명꼴이었다고 한다. 20211~7월까지 신고 건수만 해도 24,481건으로 이미 2020년 전체 건수를 넘었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늘어가고 있고 범행 수법도 날로 잔인해지고 있다. 외국에서도 살해된 남성 피해자는 주로 범죄나 사고에 연루된 것이지만 살해된 여성 피해의 가해자는 주로 가까운 관계였다는 통계가 나와 교제 살인의 심각성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교제폭력 피해를 경찰에 신고를 해도 신변 보호는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경찰에 신고했다고 보복성 폭력이 가중되고 온갖 위협을 오롯이 피해자 혼자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신고를 결정하기도 두려워진다. 두려움을 딛고 신고를 하더라도 교제관계의 폭력에 대해서 경찰을 설득하기 쉽지 않다.

 

살해 위협에 대한 전조는 피해 당사자가 가장 잘 안다. 하지만 그 정도를 가지고는 처벌할 수 없습니다. 폭력에 대한 증거가 없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사건이 일어나고 나면 그때 신고하세요라는 경찰의 답변이 우리가 현장에서 마주하는 공권력의 현실이다. 전문가조차 경찰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신변보호위원회를 통해 위치추적 장치(스마트 워치)를 지급해서 위급상황일 때 위치가 뜨게 하는 것과 피해자가 사는 곳에 CCTV를 달아주고 순찰을 강화하는 것이 최대한의 조치라고 한다. 그나마 이 정도 조치를 다행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의 증거 제일주의인 법체계 또한 폭력피해 여성들에게 넘기 어려운 벽이다. 둘만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여성 폭력에 대해서 객관적인 증거를 수집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여성폭력 피해자의 진술을 중심으로 사건조사를 하지만 한국에서는 요원한 일이다. 근래에 스토킹 처벌법이 만들어졌지만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현실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개인적으로 경호원을 둘 처지도 못 되고 겨우 경찰에게 사정사정해서 지급받는 스마트 워치에 목숨을 의지해야 하는 여성들의 상황은 참담할 수밖에 없다. 때로 경찰은 스마트워치 오작동을 걱정해서 스마트워치 지급을 거절하기도 하고 위급상황에서도 피해자 근처 500미터 안에서 피해자를 찾아 해매야 한다. 출동시간과 찾는 시간, 그 사이에 범죄는 일어나고야 만다.

 

보통 이별범죄는 교제관계, 혼인 혹은 이혼관계 등을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그런데 친밀한 관계였다는 것이 공권력의 개입을 어렵게 하고 경찰뿐 아니라 피해자 자신도 객관적으로 위험한 상황을 판단할 수 없도록 만든다. 살해하려는 의도는 없었고 그저 사랑싸움하다가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라는 주장이 주로 가해 남성에게서 나온다. 연인, 혹은 지인 간이라는 특수성은 집착과 통제를 사랑과 관심으로 포장하고 피해자 보호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유보하게 만든다. 그러나 주변에서 관심을 가지고 보면 둘 사이가 무척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성인지적 관점에서는 더욱 명확해진다.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은 여성의 헤어지자는 말을 자신을 무시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여성이 헤어지겠다는 결정을 하는 것은 누구의 지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바로 이 스스로가 남성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다. 여성이 스스로 무엇을 결정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는 순간 남성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여성에게 분노한다. 여성 대상 폭력 범죄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가해 남성의 핑계는 여자에게 무시당해서이다. 유영철도 그랬고 강남역 때도 그랬다. 인천 부평역 화장실 습격사건의 범행 이유도 여자가 무시하는 눈길로 봐서였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피해자가 벗어나려면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본인이 싫지 않아서 정리하지 못한 것이라고 피해자를 탓한다. 이것은 여성들이 놓여있는 이 사회의 차별적 구조를 보지 못한 채 피해자와 가해자가 상호 이성적이고 평등한 관계라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한 판단이다. 남자친구에 의한 살해를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에서 사는 한 여성은 폭력 가해자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교제폭력에 대한 예방과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서 현행법과 관행을 다시 조정해야 한다. 현재 가정폭력 처벌법 보호 대상자에 교제관계의 대상을 포함하는 법령이 계류 중이라고 한다. 국회는 이 법이라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경찰은 폭력 피해 여성들의 신고 시그널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범죄현장에서는 적극적으로 대응하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또한 피해자 진술도 피해자가 원하는 장소에서 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교제폭력에 대한 심각성, 여성에 대한 폭력에 대한 이해 등 성인지감수성 교육을 강화하고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신고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도록 지침을 개선해야 한다.

 

법원은 교제 폭력에 있어서 반의사불벌죄 적용을 제외하고 가해자의 형식적 반성과 피해자에게서 받는 처벌 불원 의사를 형량에 반영하는 것을 멈추고 엄벌하여야 한다.

 

남성들은 여성에 대한 통제와 폭력을 멈추어야 한다. 여성은 자신이 누구를 만날지, 언제 헤어질지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할 권리가 있다. 남자가 어떤 처지에 있든 무슨 생각을 했든 여성에 대한 그 어떤 폭력도 정당하지 않으며,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

 

202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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