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 피소사실 유출에 대한 인천여성의전화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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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 840회 작성일 21-01-06 13:43본문
관성과 침묵을 깨고 통절히 반성하여 새 길을 가자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 피소사실 유출에 대한 인천여성의전화의 입장-
박원순 전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의 피소사실 유출 경위가 밝혀진 지 일주일이 되었다. 사건의 당사자인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의 상임대표와 그 단체 출신으로 국회의원이 된 해당의원이 사과와 부인의 입장을 발표하였고 이 사건에서 핵심적 역할을 해 온 한국여성의전화와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유출 사실을 알고 사건에서 여연을 배제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것은 “할 만큼 했”으니 “책임이 없다”는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관련 단체들은 유출이 있었음을 인지한 순간 이 사실을 공개했어야 했다. 유출사건이 일으킬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서 사실을 숨길 것이 아니라 사실을 밝힘으로써 2차 가해, 사건본질의 왜곡을 막아야 했다. 그랬다면 사건의 진실이 그 당시에 명확히 밝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을 숨긴 것이 피해자보다 조직을 먼저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는지 묻고 싶다.
민주당 여성의원들은 단체 대화방에서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가해자를 ‘가해지목인’으로 명명하는 등, 명백히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의심하는 2차 가해를 자행했다. 민주당 젠더폭력TF 단장이자, 최고위원이었던 해당의원은 당의 정리된 “워딩”이라는 명분으로 ‘피해호소인’이라는 명명을 가장 먼저, 가장 일관되게 주장하였다. 여성의 입장보다 당의 입장, 남성 정치인들의 입장을 우선한 것이다.
지난 30년간 여성정치세력화운동을 통해 여성 할당제를 통과시키고, 여성 대표들을 제도정치권으로 보낸 것은 여성의 입장, 여성의 경험과 관점에서 법과 제도, 구조를 재편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몇몇 여성의원들이 보인 행태는 다름 아닌 ‘줄서기’와 ‘복종’과 ‘내 식구 감싸기’ 등 남성정치의 완벽한 복제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열악한 조건에서 여성이 정치를 하자면 남성과 협력해야 한다고, 무엇보다 당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그들은 여성과 연대하기보다 남성권력과의 연대를 선택했다.
여성운동단체는 반성폭력 염원을 담은 여성들의 권한을 위임받은 조직이다. 그 운동의 성과로 정치인이 되었다면 그 권력은 여성들의 것이지 특정 개인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만약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권한위임은 파기되어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인천여성의전화는 여연 및 한국여성의전화의 회원단체이며,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의 소속 단체로서 본 사건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잘 알기에 더욱 참담하다. 당사자들과 관련단체들이 오랫동안 함께 해 온 선배, 동료이자 그 속에 몸담고 있던 조직이라는 점에서 부끄럽고, 고통스럽고 그래서 분노한다. 이 곤혹스러움에 회원단체들도 침묵할 수밖에 없음을 안다. 그렇다고 우리도 침묵할 수는 없다. 침묵은 동조이므로.
그래서 더욱 더 강도 높은 처방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내 살을 직접 도려내는 아픔을 겪지 않고 새로운 여성운동의 물결과 여성들의 변화와 성 평등한 민주주의라는 비전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속단체로서 면밀히 대처하지 못한 우리자신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담아 제안한다.
관성과 침묵을 깨고 통절히 반성하여 새 길을 가자!
여연은 회원단체들의 연대체이다. 여연이 가진 권한은 회원단체들의 위임을 받아 형성된 대의권력이다. 여성운동이 발전하면서 여연의 권한도 막중해졌다. 그 권한은 여연이라는 조직이 가진 권력도, 여연의 몇몇 임원의 권력도 아닌 회원단체, 나아가 전 여성들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여연은 과도한 대표성을 행사해왔다. 이 대표성을 가지고 피해여성을 대변하기는커녕 남성정치인의 이익을 우선했다.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이것이다.
이제 여연은 과대 대표성을 내려놓아야 한다!
여연 회원단체들에게는 여연에게 위임한 권한을 회수할 것을 제안한다!
여성들은 여성의 대표성을 가지고 정계에 진출한 해당의원을 비롯한 몇몇 여성의원들에게 ‘여성대표’라는 상징성을 박탈하자!
오래되면 관성이 생기고, 관성이 굳어지면 위계와 권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여성운동은 태생적으로 권력에 민감하며 권력을 경계해야만 한다. 스스로 권력화하지 않으려는 매 순간의 노력 또한 여성운동이다. 권력화된 관성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이제 남성 중심적 권력을 스스로 내면화하고, 남성들의 권력에 편승해 ‘끼어들기’에 만족하는 낡고 보수적인 여성조직 및 여성정치와 결별할 때이다. 그리고 광범위한 여성주의적 공론장을 통해 ‘새로운 판짜기’를 시도할 때이다. 여성인권운동은 가부장제 사회에는 없는 새로운 길을 만드는 과정이다. 지금이 바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바로 그 때이다.
2021. 1. 6
사단법인 인천여성의전화